죽음의 순간

인생의 챕터 2012/02/02 23:46

이번 겨울 통털어 가장 많은 양의 눈이 왔던 어제, 매서운 칼바람을 헤치고 드디어 가톨릭 예비 신자 교리 첫 수업에 참석했다.
어느 것의 첫 모임에서 으레 그러하듯, 천주교라는 종교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시작으로 십자성호, 기도의 의미와 대표적으로 쓰이는 표징들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하지만 가장 눈길을 끌었던 건 바로 죽음과 관련된 영상이었다. 천주교에서 운영하는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한 개신교 말기암 환자의 인터뷰와 그녀가 이 생애 마지막 눈을 감는 순간까지의 영상 기록들. 아프지 않았다면 오히려 나만을 위한, 혹은 내가 속한 가정만을 위한 생각이 전부였을 텐데 오히려 죽음으로 가는 이 과정이 축복인 것 같다는 그녀의 말에 가슴 깊은 곳에 묵직한 그 무엇이 툭-하고 떨어짐을 느꼈다. 숨이 끊어지고 다시는 뜨지 못할 눈을 감는 일. 이생이 아닌 또 다른 삶을 살게 되는 것이라 하지만 아직 깊은 종교적 믿음이 크지 않은 나로서는 축복보다는 두려움에 더 가까운 건 사실이다. 아니, 오히려 종교의 유무를 떠나 내 현실에 깊숙히 들어와 더 이상은 먼 이야기가 아니게 된 그것에 대해 아픔의 무게가 전보다 더 실리는 건 왜 일까. 내가 소중히 생각하던, 혹은 내 곁에 존재함이 너무나도 당연하게만 느껴지던 그 누군가가 어느 날 사라지게 된다면 난 얼마만큼의 아픔을 어느 기간 동안 견디며 감당해낼 수 있을까. 

지금까지 단 한 번, 중환자실에 면회를 간 적이 있다. 온몸의 수분이라곤 전혀 느껴지지 않는 비쩍 마른 목각인형처럼 누워 계시던 그 분의 곁에서 입모양으로나마 조그맣게 말씀을 전하고 나오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3분도 채 되지 않았다. 벌집을 확대해놓은 것마냥 분리된 셀에 각기 다른 병으로 삶의 마지막을 기다리는 그 적막함들. 줄줄이 달려있는 링거와 영양분. 온 몸 이곳저곳에 연결된 크고 작은 기계들.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 때의 난 당신의 침대 곁에서 그렇게 읊조렸던 것 같다. 당신의 소중한 사람과 지금보다 더 최선을 다해 삶을 살아보겠노라고 그러니까, 그 모습을 당신께서 직접 봐주시기를 바래본다고 말이다.
지금은 그 '함께'가 이루어질 수 없는 상황이 되었지만, 가끔 죽음과 관련된 일에 대해 생각하다보면 그 때가 떠오른다. 그럴 때면 아프고 씁쓸하고. 그저 뭔가 어쩔 수 없이 흘러가고, 그에 맞춰 있는 힘껏 적응해내야만 하는 상황? 그리고 사람.  
사람은 힘들 때마다 시간을 수단 삼아 치유받는다면, 그렇다면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이 가장 큰 회복의 순간이 되는 걸까. 아니면 살면서 받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일컬어지는 것들 중, 가장 결정적인 '강요'와 '적응'의 과정에 불과한걸까.
 
잘 모르겠다. 죽음이란 단어를 반복하다보니
그냥 누군가의 목소리나 체온들이 미치도록 그리워진다. 살아있음을 증명받고 싶은 밤이다.

그저 멀리 들리는 아버지의 코고는 소리에 서늘한 바람의 돌던 맘이 조금이나마 진정되는 듯 하다.
모두, 괜찮았으면 좋겠다.
오늘 하루처럼 내일도 조금 더 조금 더 힘차게 숨을 쉬며 살아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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