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
인생의 챕터 2011/12/01 00:49-.
누군가 그랬다. 어쩌면 '하고 싶은 일'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고.
세상엔 그저 할 수 있는 일과 하기 싫은 일로 나눠진다. 할 수 있는 일 중에서 해야 하는 일이라는 판단이 드는 즉시, 당장, 열심히, 진심으로 그 일을 시작한다. 다만 그 일을 하다보면 종종 하기 싫은 일로 변질되기도 하는데, 그 떄 그 상황을 견디고 일의 진행을 유지할 지, 일을 멈출 지에 대한 판단이 필요할 뿐이다. 다만 전자를 택했을 경우에는 다시금 그 일이 할 수 있는 일로 변경되고, 그런 경험들이 쌓이고 쌓여야 비로소 내 일, 내가 잘하는 일이 되는 거라고 말이다. 참 당연한 듯하면서도, 여러 면에 있어 반성하게끔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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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는 동생으로부터 메신저 쪽지가 왔다. 작은 부탁이 있는데 들어줄 수 있냐는 내용이었다. 그 부탁인 즉슨, 자신이 쓴 시에 대한 제목을 결정하는 데에 조언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시를 읽은지 오래돼서, 라는 말을 핑계처럼 던진 후 간단하게 시에 대한 감상을 말해주었다. 덧붙여 처음 그 동생이 제시했던 제목들에 대한 문제점과 수정했으면 하는 요소들을 알려주었다. 시에 대한 이야기가 어느 정도 정리되고 나니 서로의 안부를 묻게 됐는데, 녀석은 본래 다니던 학교를 관두고 자신이 원하던 과로 편입하여 졸업한 후, 다시 석.박사 과정을 공부하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성실하게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바에 한발짝씩 내딛고 있는 동생을 보니 대견하기도 하고, 조금은 부끄럽기도 하고. 참 힘든 일을 택했네, 하고 염려하는 말을 건네자 비록 풍족할 수는 없어도 행복하단 사실엔 의심하지 않는다면서 지금 하는 공부가 더 재미있다고 웃는데, 참. 대화하는 동안 몰래 손을 넣어 내 마음 속을 뒤적뒤적해보니 약간의 부러움 섞인 설렘이 덥석 집힌다. 미지근하고도 말캉말캉한 감정. 낯간지러운 촉감.
문득 지금 우리집 책상 위에 놓인 책 한권이 떠올랐다. 가을호도 채 읽지 않았는데 이미 배달된 문학 계간지 겨울호. 김총수님 말처럼 행복은 적금처럼 부어서 차곡차곡 적립해놓을 수도 없는 건데. 도대체 나의 시간은 몇퍼센트의 행복에 할애되어 있는 걸까. 조금은 덜 불운해지기를 바라는 것에만 소모되는 데 급급한 건 아닐까?
어떤 강요에 의해 이렇게 해야만 하는게 아니라, 내 스스로 이렇게 하지 않으면 못 견딜 것만 같은 것들에 진심의 전부를 다 쏟아부울 줄 알아야 하는데.나란 사람은 하고 싶은 일을 운운하기만 하면서 정작 해야 할 일을 회피하는 것에 익숙해진 것 같아 부끄럽다. 아니, 혹은 하기 싫은 일을 그나마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적당히 타협해가며 순간순간을 회피했던 걸지도 모른다.
타협에 지나친 에너지를 쏟다보면 일상 자체가 기진맥진해진다.
회복의 기본이 휴식일 진 모르겠지만, 옳은 길을 찾아 걷고 또 걸어서 어딘가 다다르는 일 자체가 더 빠른 회복이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땐 탈력도 더디게 될 테고.
그래서일까,
과거일 지, 미래일 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직도 전력질주할 그 어느 시절의 내가 눈물나게 그립다.
그리워만 하지 말고, 달리자. 그래서 더 나아지자.